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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BS의 '심장이 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부산 모세의 기적'편이 큰 화제를 낳았다고 한다. 임신 32주 만에 양수가 터져 구급차를 타고 급히 포항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였다.

출근 시간의 부산 도시고속도로는 많은 차들로 꽉 찼지만, 부부가 탄 구급차가 지나갈 때 모든 차들이 좌우로 비켜, 임산부가 제 시간에 병원에 도착해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네티즌들은 좌우로 차량이 비켜준 모습을 빗대어 이를 '모세의 기적'이라 칭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기적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종교>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 이다. 

그렇다면, 응급 상황에서 구급차가 사이렌을 켜고 양보를 요청하는 것과, 이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응했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식적으로 생각 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음이 떠올라, 아직 우리의 시민의식이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았다.

실제로, 미국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이면 스쿨버스의 앞뒤로 모든 차가 일렬로 멈춰서는 '기적'을 연출한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뒤뚱걸음으로 버스에 타는데 시간이 꽤 걸려도, 누구 하나 경적을 올리거나 참지 못해 열에서 이탈하는 경우 또한 없다. 

뿐만 아니다. 화재진압을 위해 달려가는 소방차나, 응급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기만 해도 운전자들은 좌,우로, 자기가 비킬 수 있는 만큼 길을 터주느라 바쁘다. 자신이 갈 수 있는 초록 신호임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어린이들이, 되려 스쿨존에서 차에 치이고, 학원 버스에 문이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소방차나 구급차의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든 말든,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길 간다식의 무관심이 팽배하다. 심지어 응급차의 앞을 끼어드는 경우도 다반사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되려 길을 막기까지 한다. 장애인 전용 차량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차량은 어딜 가든 볼 수 있다.

정 많다는 한국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혹자는, 선진국의 관련 처벌 법규가 한국의 그것에 비해 비교 할 수 없이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 하기도 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선진국의 경우 그만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음의 방증이기도 하다. 처벌이 미미한 우리의 경우, 그만큼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시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선진국 시민들은 법규가 강력하고 처벌이 두려워서 이러한 '기적'을 강제적으로 연출 하는 것일까? 나는 법적인 규제가 없는 일상 생활에서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그 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가장 감명 깊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장애우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해 주기 위한 인성 교육이었다. 휠체어를 탄 학우를 도와주는 방법과, 장애가 있는 학우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등과 같이, 정말로 소소한 것에 대해서도 잘 가르치고 있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시키고, 방송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장애우는 항상 최우선으로 대접을 받고, 사람들 또한 이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이를 못 참고 화를 내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눈총을 받는다. 

장애우 전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의 걸림돌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또한 '기적'으로 보일까? 한국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어머니가,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외국에서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눈물 어린 인터뷰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
고, 건물의 출입시, 나의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혹여나 뒤에서 거리를 두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라도 문을 잡아 그 사람을 배려하고, 노약자가 있을 경우에는 아예 문을 열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 하는 모습 또한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강력한 규제의 법규가 있어서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받아온, 남들을 배려 하라는 인성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한국에 종종 나갈 때는, 주변에 누가 있든 없든 내 몸만 살짝 빠져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을 접하기도 한다. 심지어, 뒤에서 유모차를 밀고 따라가는 한 어머니를 보고서도 매몰차게 자기 몸만 빠져나가 결국 유리 문에 유모차가 받혀 아이가 우는 모습 또한 보았다. 하지만 점점 이러한 현상은 개선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부를 기준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기준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있는 듯 하다. GDP가 2만불, 3만불에 달한들,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이는 과연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은 많으나 나눌 줄 모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는 나라는, 사람으로 치면 주머니 속 자랑에만 바쁜 졸부와도 같다 할 수 있겠다.

선진국은, 세계 100대 기업에 그 나라의 기업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기준이 아니다. GDP또한 아니다.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가득한 선진 국민의식이 있는가가 기준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따뜻한 일들이, '기적'이 아닌, 상식에서 비롯된 당연한 일로서 박수 받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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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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