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뉴욕을 떠나 다시 한국을 찾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의 항공기인데도 꽤나 많은 외국인들의 모습이 보여, 한국 관광을 하려는 분들인가 하고 생각도 들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14시간 남짓한 긴 비행의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기내에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히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리모콘을 통해 게임, 음악은 물론이고 최신 영화 및 TV 프로그램등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기 이기에 많은 양의 한국 관련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문화에 대해 경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한국 영화, 일본 영화, 중국 영화등이 고루 준비되어 있는 목록들을 살피다 보니 한가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하면 후지산, 중국하면 자금성, 한국은...?
일본 영화를 모아놓은 메뉴입니다. 일장기와 함께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과 구마모토 성이 보입니다.
중국의 영화를 모아놓은 섹션입니다. 역시나 오성홍기와 중국 관광의 명소인 자금성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한국인인 저는 "맞아, 일본 하면 후지산과 구마모토 성, 중국하면 자금성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면 그곳을 꼭 가봐야겠다 라는 마음을 갖게 하더군요.
자,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은 과연 어떤것일까요? 남대문? 불국사? 석굴암? 혼자 궁금해하며 기대되는 마음으로 리모콘을 조작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엉뚱하게 태극기 옆에는 비디오 카메라와 영사기 그림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영화라는 표현을 하기 위해 해 놓은 것 같은데 일본, 중국에 비해 뭔가 성의없이 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을 나타낼만한 이미지가 그렇게 없나 하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별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세계속의 관광 사업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 관광 한국의 실태를 간접적으로 비춰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한국 관광 산업, 전통 문화 유산의 경쟁력은 과연?
얼마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하여 발표한 '국가브랜드지수' 발표가 있었습니다. '국가브랜드지수'란 국가브랜드 경쟁력의
'실체'와 '이미지'를 비교하는 것인데, 실체는 실질적인 경쟁력을 뜻하고, 이미지는 소비자의 인식을 뜻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는 제품 자체만으로는 100점중 95점의 완성도 이지만, 소비자의 인식에는 85점으로 밖에
인식이 되지 않는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미지가 참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이를 야기하는
원인으로는 원산지효과와 같은 특정 제조국가에 대한 편견과, 낮은 인지도, 혹은 잘못된 경험으로 인한 것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목해서 보셔야 할 점은, 우리의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실체 4위, 이미지 9위로 상당히 선전했는데, 이는 삼성/LG와 같은 첨단 제조산업의 활약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문화는 실체 33위, 이미지 32위로 부끄러운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이는 다시말해 실질적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 상품이 경쟁력이 없고, 외국인들의 눈에도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몇가지 살펴볼까요?
Korea”가 없는 “코리아타운”
몇 년 전 처음으로 Los Angeles의 코리아 타운을 방문하게 되어 가슴이 설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100만 명의 한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코리아 타운에 가면 왠지 서울의 거리를 옮겨 놓은듯한 모습과 미국 한복판에서 한국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많은 볼거리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리아타운이 있는 Wilshire길로 접어들면서 그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코리아 타운임을 상징할 수 있는 한국 전통 양식의 구조물이 하나 정도라도 있겠지 하며 주위를 둘러
보아도, 코리아 타운임을 알 수 있는 요소라고는 단지 “Koreatown”이라고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 하나와 사방을 뒤덮고 있는
한글 간판들뿐 이었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상징할만한 그 무엇도 없는 이곳은 “Koreatown”이 아닌 단지 “코리안들이 모여
사는 상업 구역”이라고 불리는 게 더 나을 듯 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중국인들이 밀집하여 거주하는 차이나 타운은 중국의 성 같이 지어진 Main Gate를 통해 주 광장인 Central Plaza로 들어가면서 마치 중국의 한 마을을 옮겨 놓은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색깔인 붉은색으로 칠해진 기와 건물들과 황금색 용들 사이에 둘러싸여 중국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에는 중국의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폭죽 쇼와 함께 용/사자 춤으로 성대한 퍼레이드를 펼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중국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1884년 독일인 마을에 일본인 요리사가 살기 시작하면서 그 시초가 된 일본인들의 거주 지역인 “Little Tokyo”에서도 일본의 문화를 잘 느낄 수가 있는데, 이 곳에는 일본인들이 노력하여 만든 일본식 정원만도 14개에 이르고, 일본 전통의 망루나 전원 마을도 있어, 나도 모르게 일본의 문화에 둘러 싸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코리아 타운 내에서 판매하는 한국 음식들이 바로 한국의 상징이 아니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김치, 비빔밥, 갈비, 그리고 냉면 모두가 코리아 타운 내에서 한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이미지 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자가 일본과 중국이라는 경쟁사를 외면하고 그 사이에서 한국을 선택 하고 코리아 타운 안으로까지 들어
왔을 때의 이야기이고, 이 “들어오게 만드는” 과정을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를 나타내고 상징할 수 있도록 하는 “포장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단지 “음식과 찜질방”만을 위해 코리아 타운을 찾게 하는 것이 아니라, “리틀 도쿄와 차이나 타운에는 없는 특별한
문화적 매력을 내세워서 저절로 발걸음을 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세계 인터넷의 사진들을 검색할 수 있는 Google의 이미지 검색창에 “LA Koreatown”,”LA
Little Tokyo”,그리고 “LA Chinatown”을 차례대로 검색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LA
Little Tokyo”와 “LA Chinatown”을 각각 검색해보면 그 상징이 되는 전통 건물들을 배경으로 하거나 주된
대상으로 삼아 찍은 기념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비하여, “LA Koreatown”의 경우에는 그 상징을 하는 구심점이 없는
이유로 갈비나 김치 같은 음식의 사진이나 노래방과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기념 사진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보듯이, 외국인들이 인식하기에도 Koreatown을 대표할 만한 상징물이나 볼거리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규모상으로는 차이나타운과 리틀 도쿄를 합친 것의 5배나 된다는 코리아타운은 한마디로 덩치 값을 못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을 느끼기 위해 코리아 타운을 찾은 외국인들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다른지 특징을 알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태어나 자신의 뿌리에 대해 배우고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은 2세, 3세 아이들에게 또한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이처럼, Koreatown은 한국인들이 사는 모습만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만 그칠게 아니라, 저절로 한국을
홍보할 수 있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인들 끼리만해도 충분히 먹고 살수 있는데 뭐 하러 상징물같은데에 돈을 쓰느냐는 것은 너무도 근시안적인 생각이며,
Koreatown내에서 모든 것들이 한인들을 위한, 한인들끼리만 소비하는 우물 안 개구리적 문화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6.25
동란 이후 고도의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가옥들이 헐리고 무미 건조한 성냥갑 아파트들이 가득한 서울의 모습에는 한국을
상징할만한 볼거리가 없다는 지적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국을 찾기가 어렵다
◆ 인사동 전통거리에는 '한국의 전통이 없다'
인사동의 한 기념품 가게, 기모노를 입은 일본 인형이 팔리고 있다. 중국 청나라 사신 도자기 인형과 상아 조각도 나란히 줄을 서 있다. 진열되어 있는 각종 불상들 역시 인도네시아와 중국, 일본의 색채가 짙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목각 인형이 달마상 옆에 버젓이 놓여 있고, 아프리카의 전통 탈은 입구에서 큰 입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각국에서 들여온 기념품들이 비좁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로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고유의 색채를 잃은 인사동에 쓴 소리를 남겼다. 기하영(24)씨는 "최근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가 크게 실망했다"며 "선물할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인사동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무늬만 '한국'... 국적 불명의 거리, 인사동", 노컷뉴스 2010.03.01)
- 수공예품 손 때 묻은 카페 사라지고
- 외국 브랜드 점포 속속 들어차
- 전통美는 온데간데...그냥 동네로
("삼청동, 옛 추억을 잃어버렸다" 아시아경제, 2012.2.22)
이 두편의 기사 외에도, 우리가 일상속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더욱 많습니다. 한국에서 한국 고유의 멋을 담은 요소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여기저기에도 보이니까요.
강남역이나 홍대쪽을 나가보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더욱 일본적인 이름과 일본적인 이미지를 앞세워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더군요. 블록 하나를 건너면 있는 이자까야와, 힘찬 필체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적힌 간판들을 보면서, 여기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과연 외국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하는 생각이 들법도 했습니다.
Japanese-IZAKAYA@Gotanda by iwalk.jp
전통 유적 보존 및 개발하여 관광자원으로 키워내야
그러던 중 반가운 기사를 하나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인사동의 명물 쌈지길 건물 옆, 허름한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막다른 끝에 자리잡은 한옥 건물의 모습이 어딘가 생소해 보이기 때문이다. 기와지붕과 나무 기둥의 전형적인 한옥은 분명한데, 다른 것은 높이. 한옥에선 보기 어려운 2층 건물이다. 20세기 초 서울에 등장했다가 멸종되었던 2층 현대 한옥이 최근 소리소문 없이 전통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 부활한 것이다.
관훈재의 등장에 이어 조만간 서울에서 또다른 2층 한옥들이 지어질 예정이어서 한옥의 복층화 실험은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은평뉴타운 안에 특별건축지역으로 한옥마을을 지정해 2층 한옥을 짓겠다고 최근 밝혔다. 고가 건축이 된 한옥을 서민용으로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은평 한옥마을에 ‘다세대형 한옥’과 ‘2층 한옥’ 등을 시도하겠다는 취지다. 관훈재와 앞으로 지어질 은평 한옥마을 한옥들이 과연 서울의 단조로운 도시 경관에 새로운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는 촉매제가 될지 주목된다. ("100년만에 서울에 다시 나타난 '2층 한옥' (한겨레, 2012.05.02)")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렇습니다. 뒤늦은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계속해서 고유한 독창성을 살린, 그러면서도 전통의 방식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인 요소와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단지 쇼핑만을 위해 찾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 외에도, 한국만의 멋지고 독특한 관광 자원들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더욱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듭니다.
그때가 되면, 한국을 소개하는 화면에는 마땅히 들어갈 그림이 없어 사진기와 영사기 그림이 아닌, 우리만의 멋스러운 이미지가 차지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다큐멘터리를 보시면 이러한 내용에 관해 보다 생생하게 접하실 수 있습니다.
"SBS 특집다큐멘터리 - 한국의 전통, 신한류의 길을 열다"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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